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자유, 평등, 도덕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이 글은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고, 기준이 권력에 의해 설정된다는 점을 통찰합니다. 대마와 담배, 종교와 도덕, 창의성과 자유 등 익숙한 개념들을 낱낱이 해체하며, 진정한 자유란 허가된 틀을 벗어나는 데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언어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단어의 의미, 문장의 규칙, 표현의 경계까지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요?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사고의 틀을 구성하고, 감정과 인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가 사고의 흐름을 통제한다면, 그 언어의 기준을 만드는 자가 곧 권력을 가지는 셈입니다.
언어는 사고의 틀이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양한 단어를 알고 사용할 수 있을수록 우리의 감정과 사유도 정교해집니다. 반대로, 제한된 언어 속에 갇힌다면 감정 표현도 단편화되고, 생각의 확장도 어려워집니다. 결국 우리는 ‘정해진 언어’ 안에서만 자유롭다고 느끼는, 착각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 사고는 고정된 언어의 틀을 의심하고 부수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름다움과 도덕 기준의 상대성
우리는 선, 악, 아름다움, 도덕, 규범 등 수많은 개념들을 ‘절대적’이라 믿고 따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모든 기준은 시대와 권력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과거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여겨지던 것이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여겨지고, 시대의 영웅이었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죄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준은 절대적이라기보다 ‘지배적인 감각’일 뿐입니다.
종교와 절대선의 오류
종교는 대표적인 ‘선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언제나 정의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전쟁, 박해, 차별, 마녀사냥 등 수많은 폭력이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종종 권력과 결합하며, 믿음조차 통제의 수단이 됩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선함 역시 역사 속에서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통제된 자유와 창의성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창의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요? 자유롭다고 말하면서도 규범에 어긋나는 표현이나 행동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창의성을 장려한다 말하면서도 교육, 사회, 예술의 모든 영역은 이미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움직입니다. 자유와 창의성마저 ‘허가된 틀’ 안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짜 자유일까요?
대마와 담배의 기준 왜곡
대마는 불법이고, 담배는 합법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기준을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대마는 담배보다 중독성도 낮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습니다. 이처럼 ‘위험하다’는 사회적 낙인은 과학이 아닌 권력과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악이라 규정하고 거부하는 그 감각은 진실이 아니라 ‘학습된 공포’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준 속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받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살아갑니다. 자유롭지 못해도 자유로운 척하고, 불평등해도 평등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짜 삶은 타인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때론 고통스럽고 외롭더라도, 스스로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